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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feel

[21년 독서 결산] 카페 거리 거주 3년 만에 달성한 카페 독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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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거리로 이사를 왔을 때가 아니라 사실 그냥 처음 독립했을때부터 나는 내가 휴일이면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집순이였고, 그래서 작년에 카페 투어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서야 로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2021년 한 해 동안 나는 한국문학을 주로 읽었구나!
사실 더 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카페에서 사진을 찍어둔 책들이 이것밖에 없네. 올해에는 본격적으로 시작한 운동을 비롯해 다른 할 일들이 너무 많아져서 책 읽을 여유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다시 시간을 내서 책 읽으러 다니고 싶다.
이렇게 잘 꾸며진 공간에서 적당한 조명과 맛있는 커피와 함께 소설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의 21년을 버티게 했던 것 같아.


1.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2021. 10. 04, 신동 카페거리 도로시 커피 - 토피넛라떼

꽉 닫힌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좋아할 가벼운 SF 로맨스 소설.
불행했던 어린 시절, 나 역시 나만을 위한 어느 초월자가 나타나 나를 구원해주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만약 내가 어린 시절 이 책을 접했다면 이 이야기는 나의 전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재미있게 후루룩 읽었고 또 왓챠피디아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 다시 생각해보면 2만 광년이나 떨어진 행성에서부터 여자를 지켜보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지구까지 찾아와 남자친구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애인인 척 접근하는 이 외계인이 크리피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은 설정이 이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만, 스토킹 범죄와 스톡홀름 증후군을 미화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가가 많이 엇갈리나보다.
그래도 이 삭막한 땅에 만일 나만을 위한 초월자가,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온다면.... 아마도 나의 대답도 Yes..


2. 완전한 행복 - 정유정

2021. 09. 07, 행궁동 정지영 로스터즈 장안문점 - 런던 포그 밀크티

지금도 한 번 더 읽고 싶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흡입력 높은 소설.
제목이 완전한 행복이기에 정유정 작가임을 알면서도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책이 힐링물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힘들었던 하루를 끝내고 가볍게 힐링하자는 느낌으로 책을 펼쳤다가 앗... 하고 온 힘을 다해 읽어버린 것이다.
실화 바탕이라고 악평을 듣던데, 나는 해당 사건을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시간 내내 재미있기만 했다. 세상에 '충격 실화!!!'를 표어로 내건 소설이며 영화가 한가득인데 왜 이 소설만 그렇게 욕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정유정의 소설들이 그렇듯, 반전 없이 끝을 충분히 짐작하겠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충격 반전 혹은 고도의 트릭이 담긴 스릴러를 정말 좋아하지만, 예정된 파국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놓는 것이 더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나 또한 오랜 시간 리셋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인물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만도 아니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다를 뿐, 겪는 아픔은 다들 비슷한가봐.


3. 달의 바다 - 정한아

2021. 08. 30, 신동 어라운드 커피 - 카페 모카

저녁 카페 독서에 참 잘 어울리는, 금방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이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진로에 관해 고민하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는 이야기랄까...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각하는 '실패'를 한다 해도 나는 어찌어찌 계속계속 살아가기 마련이고, 남은 내가 보여주지 않으면 나의 실제를 들여다 볼 수 없다. 하이라이트만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내 삶은 구질구질하고 힘들었을 것이고, 그러는 중에도 또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지.
'완전한 행복'에서 행복을 고집하는 것이 결국 불행을 불러온다는 것을 배웠다면, 이 책을 읽으면 삶은 결국 흘러가는 것이고 그렇게 삶을 흘리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배울 수 있다.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2021. 02. 07, 광교 교보문고 - 레몬티

어떻게 보면 내가 카페 독서를 시작하게 된 책.. 내가 어릴 때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재능있는 젊은 소설가를 보면 조금 질투가 난다.
7개 단편이 다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공생 가설이다.
5세 이전까지는 뱃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한다더라, 어린 아이들은 전생을 기억한다더라 등 모두가 겪었지만 지금은 잊어버린 어린 시절에 관한 이해할 수 없는 그리움을 SF 장르와 환상적으로 엮어내었다. 단편도 좋았지만 해당 설정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도 읽고 싶다.


5. 빛의 과거 - 은희경

2021. 10. 04, 행궁동 카페 부터 - 레몬에이드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은희경 작가의 장편. 어떻게 한국어를 이렇게 사용할까?
은희경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갖 밈과 자극적이고 짧은 요약에 절여진 뇌가 디톡스되는 느낌이 든다.
빛의 과거를 읽는 중에 마침 나도 오랜만에 과거의 인연을 만나던 차여서 이 책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10년 전 과거도 이렇게 가물가물하고 옛일만 같은데, 60대의 나는 그 때와 지금을 또 어떻게 회고할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30대의 나도 너무 어리게 느껴졌다. 그래 이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해. 20대 초반의 자신감을 모두 잃고 우울한 20대 후반을 지나 세상에 설 자리를 잃은 것만 같은 30대 초반의 나. 내가 살아온 만큼 시간이 또 지나고 나면 지금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
60살의 내가 할 말은 뻔하다. 그거 별거 아니야. 그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거 고민할 시간에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더 좋은 걸 많이 누리고,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그리고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시작해.
그러니 그렇게 하자.


6. 저기 인간의 적이 있다 - 천선란/강다연/유목연/이민섭

2021. 10. 14, 신동 어라운드 커피 - 말차라떼

이상한 제목과 표지 때문에 출간되기를 기다렸다가 읽었던 책.
꽤 재미있었고, 중편이라 가볍게 읽기 좋았다. 나는 두번째 이야기인 더블 살인과 마지막 이야기 공룡이 잠든 도시가 좋았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에 여러가지 자신만의 특별한 설정이 붙는 부분이 좋았고, 공룡이 잠든 도시는 판타지 동화처럼 기억에 아련하게 남았다.


7.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2021. 02. 07, 광교 교보문고 - 레몬티

사실 단편집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데, 어쩐지 단편을 정말 많이 읽게 되었네. 작년에 읽은 다른 단편집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교보문고에 잠시 방문했을 때 장편을 읽으면 읽다 흐름이 끊길까봐 일부러 고른 책이었다.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좀 속독해서 후루루루룩 읽어버린 감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이렇게 대충 읽고 또 거의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단편은 '리틀 베이비블루 필'이다. 이 단편이 영상화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수면제를 받아놓고도 다음날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것이 두려워 복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평생 잊지 않을 기억을 고르라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나는 제대로 된 기억을 고를 수 있을까? 아마 약을 사놓고도 평생 복용하지 못하다가, 폭주해서 쓸모없는 기억만 가득 안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8. 비행운 - 김애란

2021. 10. 20, 행궁동 정지영 로스터즈 화홍문점 - 런던 포그 밀크티

범죄자에게 표절당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가 우연히 제주도의 카페에서 집어들어 앞부분을 읽고, 마침 같이 간 친구가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빌려 읽게 된 책. 사실 우울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져 너무너무 힘들었다.
당분이 필요해 마시멜로우가 들어간 스모어 쿠키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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