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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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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바지를 벗다가

다리 한쪽이 채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이 되었다, 는 말을 들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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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는 피폐한 자들의 가장 아늑하고 편리한 안식처다. 나는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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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는 언제나 짧고 단호할수록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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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와 갑수씨는 결코 잘되지 않았을 거라 대답해주었다.
백 퍼센트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잘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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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부장과 함께 웃으며 '멀쩡한 듯 보이려 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사실 정말 멀쩡했던 자신을 상기했다.

혐오감보다는 열패감이 먼저 들었다. 부장은 갑수씨의 미래였다. 갑수씨는 부장의 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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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수씨는 꼰대가 될 겁니다.

왜죠?

모두에게 자기 과거는 연민과 애증의 대상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과거를 신화화하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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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규정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모든 종류의 가치판단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했다 믿는 사람이라니

대체 그런 자와 무엇을 함께 도모하고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군가의 삶에 그런 식으로 개입되고 싶지 않다.

그의 이유가 되고 싶지 않다. 상대가 갑수씨처럼 한없이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세상에 한 겹이 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갑수씨를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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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해가 유효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자기 존재가치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거대해서 그것을 훼손했을 때 대개의 어지간한 문제들을 뭉갤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충 뭉개서 해결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생명이 너무너무 소중한 사람들은 타인의 숭고함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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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구석이 있는 자라면 살면서 그 방면에서 숙적이라는 걸 만나기 마련이다. 슈퍼맨에게는 렉스 루서가 있었다. 배트맨에게는 조커가 있었다. 홈즈에게는 모리아티가 있었고 폴에게는 대마왕이 있었으며 바베크 탐정에게는 검은 별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닮은꼴이되 바로 그 이유로 그것이 동족혐오 내지는 자기파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상대의 절멸을 도모한다. 그리고 상대의 부재가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것임을 확신한다. 평화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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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나에게 언제 어디서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선의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도록 훈련시킬 줄 알았다. 그녀는 사랑받으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의 바로 그런 사람 말이다. 그녀는 오로지 사랑받기 위해 연애를 했다.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확인받기 위해 연애를 했다. 상대는 자위기구에 불과했다.

선천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태생적으로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얼굴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수술대 위에서 일어날 때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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