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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 피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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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9

"마을 대장의 장남과 목수의 아들 사이니까, 격이 다르지."

 

p. 80

촌장이 되기 위한 제왕학이라니. 구로사와로서는 영 딴 세상 소리처럼 들렸지만

작으나마 공동체를 유지해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교양과 기술이 필요할 것 같기도 했다.

 

p. 86

"'도적놈은 도적놈처럼 안 입는다'라고. 나쁜 사나이는 보통 멀쩡하이 채리입고 찾아온다고 말이다.

구질구질한 꼴을 하고 있는 놈들은 보나 마나 빤하다는 기라. 그라이 척 봤을 때 매끈하게 빠진 니를 보이 요놈, 딱 도적놈이구나 싶었재."

 

p. 87

하늘에는 마치 연기라도 긴 것처럼 하얀 구름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투명한 느낌을 주는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참 고즈넉하구나 하며 구로사와는 풍경에 취햇다. 구두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메아리쳤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이 상쾌한 파란 하늘 아래를, 자신보다 50년 이상이나 길게 살아가는 여성과 함께 느긋하게 걷고 있다는 사실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p. 91

동굴에 들어가 다리를 덜덜 떨면서 웅크리고 앉는다. 바위가 입구를 막는 소리를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었을가.

빛이 차단되고 주위의 벽이며 자신의 피부가 시커먼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하릴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p. 96

차가운 손으로 남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것만 같은 억양 없는 목소리

 

p. 128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면 권위만으로는 부족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통치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도 되면서,

사람들을 견인해나가야만 해. 그 대신 개개인의 공포나 불안, 불만을 받아줄 사람도 필요하지. 내 아버지는 엄격했어.

할아버지는 사람이 좋고 너그러웠지. 두 분 다 마을 사람들의 불만을 샀어. 엄격하면 굴욕이, 만만하면 경멸이 생겨나지.

제대로 거느리려면 그 양쪽의 균형이 필요해. 요컨대 두 사람이 있는 편이 낫다는 거지. 엄격한 사람과 그 불만을 받아줄 사람 말이야."

 

p. 269

"이모저모 신경은 쓰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래서?'라는 느낌 밖에 못 가져.

그래서 어쩌라고? 타인을 향한 내 관심은 그 정도 선이야."

 

p. 280

"사는게, 괴로워요."

오니시는 그 말을 들으며 1년 전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려고 했던 자신을 기억해냈다.

그때 "기린 타고 갈 테니까" 하고 허풍을 떨며 자신을 구하러 왔던 이마무라의 그 든든하던 힘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래, 괴롭구나." 구로사와가 말한다.

이런 장면에서 "다들 괴로워" 같은 소리를 하지 않으니 참 근사하다고 오니시는 생각한다.

 

p. 310

'이사카 씨는 기발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선택이 훌륭하니 무기가 되어줄 거다'

강한 단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p. 314

언뜻 보기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것.

그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보이게 하는 것이 픽션이 주는 기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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